산행

촉석루

고향사랑1 2016. 6. 7. 15:37

남중이오회 전주모임에서 야외 나들이로 통영을 찾아가던날

먼저 진주 촉석루를 들으다.

공북문으로 들어와 사진 한컷

 

 

 

짧은 시간에 촉석문, 촉석루, 의암, 의기사를 둘러보는 일정

 

 

 

촉석문

 

 

 

촉석문에서 촉석루를 향하여

좌측 강변은 진주 남강

 

 

 

촉석루에서 의암바위쪽으로 내려가는 길

 

 

 


 

 

 

 

의암

 

 

 

촉석루

 

 

 

 

사당 의기사는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가 끝난 후 일본군 장수를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의기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이 의기사는 논개의 의로운 충절을 기리기 위해 1740년(영조 16)에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임금의 윤허를 받아  창건했다.

기생을 기리기 위해 임금이 사당을 짖도록 한 것을 역사적 사건이며

문화해설사는 논개가 장수 출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세였다.

 

 

 

의기사에 '의기사감음'이란 제목으로 산홍이 의기사를 참배한후  쓴 시가 걸려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진주의 의로움/ 두 사당에 또 높은 다락 있네/ 일없는 세상에 태어난 것이 부끄러워/ 피리와 북소리 따라 아무렇게 놀고 있네'.

논개는 임진왜란 때 왜장을 안고 남강에 몸을 날려 이름을 남겼지만,

산홍 자신은 일없이 노는 것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진주기생 산홍에 관한 기록은 항일순국지사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에 있다.

1906년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이지용이 진주에 왔다. 산홍을 보는 순간 이지용은 마음을 빼앗겼고 많은 돈을 내놓으며 자신의 첩이 돼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산홍은 "세상에서 이 대감을 오적의 우두머리라고 합니다.

첩은 비록 천한 창기이오나 자유로이 살아가는 사람이니 무슨 사유로 역적의 첩이 되겠습니까"라고 거절했다.

내부대신 이지용이 내부협판 이봉래의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아갔는데 또다시 보석 반지 등 거금을 주며 술에 취해 첩이 되어 달라하고 공갈 협박을 일삼아

산홍이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자결 순국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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